환상통

Published

Apr 13, 2025

Topic

novels

✴경고 : 신체 훼손에 관한 묘사 有

 

 

소파에 걸터앉아 뚱한 표정을 짓는 놈을 툭, 발로 찼다. 멀쩡한 한쪽 뺨을 부여잡고 입을 삐죽 내민 채 무어라 중얼거린다.

“난 이제 평생 인공물을 달고 살아야 하는 거야….”

저거 또 개소리한다. 몇 달 전까지 치통을 크게 앓다가 갑자기 괜찮아졌다는 김기정의 말에 공포를 느끼고 그를 치과에 끌고 가다시피 했다. 결과는 임플란트. 충치가 치아를 갉아 먹다 못해 신경까지 죽여버린 거다. 그러게, 아플 때 진작에 치과에 갔으면 좀 좋아. 돈은 돈대로 깨졌다.

“인공물이고 나발이고, 가라고 했을 때 갔으면 됐잖아.”

“하, 내 이가 내 게 아니라니….”

“돈 몇백씩이나 주고 심었으면 네 거지, 누구 거냐?”

황보석은 이미 그를 이해하기를 반쯤 포기했다. 원래부터 제 것이 아닌 가짜 이는 소용이 없다나. 제 신체를 다른 인공물로 교체한 지점에서 자기는 이미 신체 훼손당한 기분이라 우울해졌다고 했다. 무슨 소리야? 그러면 치아 관리 못 해서 충치 번지게 한 본인도 신체 훼손한 거 아닌지. 그러거나 말거나, 황보석은 당장 내일 출근해야 하는 사실이 더 심란했다. 김기정의 어금니가 가짜든 진짜든, 내가 내일 학교를 왜 가야 하는데? 아무래도 내가 선생이니까 그렇겠지. 썩을.

 

기술의 진보는 참 빠르다. 안드로이드 같은 건 30세기쯤 되어서야 나올 법한 기술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람 사는 건 한 치 앞도 모른다고 했다.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발달한 기술이라면 의료계에서는 이것이 얼마나 혁신이겠는가? 이것이 일상에서 범용으로 보편화될 날도 코앞이라고 했다. 놀라운 발전이다. 의사 선생의 말에 황보석은 그래요? 하고 말았지만.

얼마 전, 황보석은 새로운 인공 관절을 얻었다. 완전히 못쓰게 되어서 말이다. 평소와 같이 취미 삼아 산을 탔더니, 운이 나빠 조난을 당했고, 그 과정에서 양쪽 발목이 완전히 분질러졌던 일은 운수가 최악이라고 말하기도 부족했다. 구조되기까지 시간이 꽤 많이 걸린 탓도 있고 이래저래 상황이 많이 안 좋았던지라, 종국엔 그렇게 되었다. 평생 살아 지내온 것이 있어서, 괜히 돈 아끼겠다고 평생 앉아 지내는 것을 택할 수는 없었다. 직업이 직업인 탓도 있었다. 몸이 불편하든 아니든, 앉아서 말로만 가르치는 체육 선생보다 당연히 같이 뛰는 체육 선생인 편이 아이들에게도 좋을 터였다.

황보석의 양발은 옛날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그가 움직이는 대로 자유자재로 움직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온전히 황보석의 것이 되지는 못했다. 통증은커녕 간지럼조차 느끼지 못하고, 시간이 지날 때마다 발톱을 깎을 필요 또한 없었다. 황보석의 발은 그 시간에 멈춰있는 것이다.

김기정은 황보석의 발은 더 이상 황보석의 것이 아니라며, 영영 가짜 발을 달고 살아야 할 그를 향해 가짜인지 진짜인지 모를 안쓰러움을 토했다. 제임스와 클로이. 김기정이 각각 황보석의 왼발과 오른발에 붙인 이름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놀리는 태도가 분명했지만, 그 나름대로 황보석을 위로하는 마음에서 그랬을 것을 황보석 또한 안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김기정은 그런 황보석의 발을 보고, 제 것처럼 아파했다. 정작 당사자인 황보석은 그에게 오버 좀 그만하라며 넌더리를 냈지만… 딱히 그럴 필요도 없었다. 재활이 완전히 끝나고 익숙해져서 이 발이 원래 제 것이었는지 아닌지 헷갈리게 될 때쯤이 되어서도, 김기정은 황보석의 양발을 꼬박꼬박 각각의 이름으로 불러주었다. 참 감사하기 짝이 없지 않은가? 황보석은 제 발을 저보다 더 아껴주는 김기정에게 제임스와 클로이를 위한 새 신발을 선물 받았다. 놀려대는 꼴을 보아하니 평생 그럴 것 같아서, 신발이라도 하나 사주고 놀리라는 황보석의 협박에 김기정은 결국 굴복했다.

 

인조인간, 사이보그. 김기정은 그런 것들을 싫어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인조인간을 싫어했고, 사이보그를 두려워했다. 생명이 아닌 것이 살아 숨 쉬는 척 연기하는 게 싫고, 살아있는 신체가 본연의 것이 아닌 다른 것으로 대체되는 것이 무섭다고 했다. 인조인간은 그렇다 치자. 사이보그는 대체 왜? 따지고 보면 황보석도 일부분 사이보그인 셈이다. 이런 말을 하면 김기정은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며 되려 혀를 찼다. 아마 영화나 책을 너무 많이 본 탓일 거다. 황보석으로서는 그의 말이 이해가 잘 가진 않았지만, 김기정은 황보석이 그러든지 말든지 저 혼자 이런저런 공상을 했다.

김기정은 생각이 참 많았다. 예를 들자면, 어느 날 갑자기 손가락이 잘리면 어떻게 해야 하지? 같은 뜬금없고 쓸데없는 생각들. 그 딴에는 쓸데없는 생각은 안 한다고 굳게 믿는 듯했다. 손가락이 잘렸을 때 대처법을 알고 있으면 언젠가는 써먹을 수 있지 않겠냐, 하고 반박했지만… 글쎄. 생각해 보아라. 미술을 하는 그에게, 학교에서 공놀이나 가르치는 나에게, 손가락이 잘릴 일이 뭐가 있겠냐고. 김기정이 캔버스에 타카질하다가 다칠 수는 있을지언정, 김기정이 우려하는 그런 수준의 사고가 일어나는 건 여간 생각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예술인들은 대체 뭘 보고 다니는 건지, 그가 하는 이야기의 흐름은 도무지 종잡을 수 없었다. 그는 늘 현실에서 반 발짝은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라고 생각을 했는데. 사람 일은 모르는 거였다. 신께서 이미 일부분 사이보그가 되어버린 황보석을 봐준 건지, 그런 황보석을 놀리던 김기정에게 천벌을 내린 것 또한 모를 일이다. 단순히 생각하자. 황보석은 운이 무지하게 좋았고, 김기정은 아니었다고. 김기정의 운이 너무 나빠서 그랬던 거라고. 아무리 생각해도 술 처먹고 운전대 잡은 씨X놈에게 잘못 걸려야만 했을 까닭이 떠오르지 않은 탓이었다. 황보석은 사람이 하늘을 그렇게 높이 날 수 있는지도 그날 처음 알았다. 살면서 혈액으로 점철된 신체조직의 단면을 처음 목격했던 그 순간도, 아마 평생 잊지 못하겠지 싶었다. 아스팔트 위에 두어 바퀴 구른 후 보이는 광경에, 황보석은 문득 떠올린다. 지체없이 119에 신고하고, 12시간 이내에 수술을 받는다. 절단면에 이물질이 묻었다면 생리식염수나 수돗물로 닦은 후, 거즈나 깨끗한 천에 싸서 비닐 팩에 밀봉한다. 얼음주머니 혹은 차가운 물에 넣어 차가운 온도를 유지한다. 안타깝지만, 이건 겨우 손가락이 절단되었을 경우에나 써먹을 만한 이야기였다.

천벌 받은 놈에게 자비를 베풀어주는 것 또한 신 아니겠는가. 그리고 어떤 이에게는 돈이 곧 신이라고 했던 것도 같다. 회복을 마치고 침상에서 눈 뜬 황보석은 위자료, 보험료, 적금,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다 몽땅 수술비에 가져다 부었다. 신의 자비로움으로 하여금 김기정의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다행이지 않은가. 황보석이 밤마다 아무도 없는 6인실 구석 침대에 누워 남몰래 빌고 빈 보람이 있다. 새벽만 되면 북받쳐 오르는 감정에 흐르는 눈물 닦으며 괜히 성냈던 건 덤이다.

 

기술의 진보는 참 빠르다. 문자 그대로의 ‘몸’을 대체할 수 있는 기술 같은 건 30세기쯤이나 되어서야 나올 줄로만 알았다. 몸 반절이 완전히 날아갔던 김기정은 다시 온전한 두 발로 걸을 수 있게 되었고, 양손으로 멀쩡히 키보드를 두드릴 수도 있었다. 회복과 적응에는 긴 시간이 걸렸지만, 죽다 살아나는 회복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마저 감사한 일이다. 감사의 값으로 회복하는 과정에서 고통을 감내하느라 잇몸에서 피 나도록 어금니 꽉 깨물었지만.

마지막으로 방 천장을 보았던 게 언제였던가. 수개월의 회복 기간을 지내고 퇴원한 이후 처음으로 방 침대에 누웠다. 끼익거리는 침대 프레임과 불편한 매트리스가 그동안 얼마나 신경을 거슬리게 했는지. 재활치료 기간은 여즉도 한참 남았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멀쩡히 두 발로 걸어 들어가서 스스로 옷을 갈아입고 잘 준비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김기정은 아주 오랜만에 허브 향이 나는 바디워시로 샤워했고, 알콜 냄새가 배지 않고 섬유유연제 향이 나는 부드러운 잠옷으로 갈아입고, 푹신한 매트리스 위로 올라갔다. 해야 할 것들이 아직 많이 남았지만, 기분만큼은 모든 것을 끝낸 것 같았다.

 

 

언제부터였나? 그가 생물도 무생물도 아니게 되어버린 것은. 생물과 무생물을 나누는 기준은 단언컨대 그것이 생명 활동을 하고 생태계와 상호작용을 하는가로부터 비롯된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숨을 쉬는 모든 것들. 그렇다면 생명 활동이 없는 것이 생태계와 상호작용을 하는 경우, 그것은 생물이라고 해야 하는가, 무생물이라고 해야 하는가?

“…그렇게 됐어.”

“그렇게 됐다고 하면 끝이냐?”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리며 신경질을 냈지만, 김기정은 애매한 미소만 지어 보였다. 딱히 용서를 구하는 얼굴도 아니다. 애초에 어느 한쪽이 사과하거나 사과받을 만한 상황도 아니었다.

“X발, 난 진짜….”

이미 콧대 위에 똑바로 자리 잡은 안경을 몇 번이고 다시 고쳐 썼다. 제 미간이고 이마고, 신경질에 잔뜩 주름졌을 게 뻔했다. 황보석은 알 수 없는 얼굴을 한다. 우스운 건지, 슬픈 건지, 화가 난 건지, 아마 저도 모를 터였다. 하나 확실한 건, 충분히 고통스러워하는 얼굴이다.

“너를 이해할 수가 없다.”

어쩌다 보니 김기정은 완전히 깡통 로봇이 되어버렸다. 알아채지 못할 만큼 정교하게 만들어진, 인간의 모습을 한 로봇. 땅을 박차고 뛰어다니는 다리, 그림을 그리는 손, 주말마다 끓이는 짜장라면을 씹고 먹고 소화하는 모든 과정에 관여하는 장기들,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눈까지 전부. 온전한 그의 것은 겨우 농구공보다는 조금 작은 머리 안에 들어있을 뇌뿐일 터였다. 아니, 저 모르는 사이 그것마저 전기자극 없이 작동하지 않는 가짜가 되었을지 누가 어떻게 아는가. 문제의 시발점이 어디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황보석은 처음 그가 수술을 마음먹었을 때부터 완강히 반대했다. 옛날처럼 어디가 못쓰게 된 것도 아니면서 왜 그러느냐고 말렸다. 김기정은 그를 죽어라 설득했고, 그 과정에서 너무도 많이 다투었고, 그는 부모님 몰래 귀 뚫고 타투하는 양아치처럼 굴었다. 효시를 날린 것이 황보석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 죽기 직전인 김기정을 위해 있는 돈 없는 돈 쏟아부어 아득바득 그를 살려낸 것도 황보석이었고, 스스로의 모습을 견디지 못해 힘들어하는 김기정이 스스로를 받아들일 수 있게 도운 것 또한 황보석이었다. 김기정은 정말 사이보그가 된 자신이 좋은 걸까? 황보석은 모든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김기정은 사이보그를 두려워했다. 그러니까 정확히는, 사이보그가 '되는 것'을 무서워했던 것 같다.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스스로 선택한 것을 영원히 끌어안고 가야 한다는 사실이. 이미 한 번 대체된 것이 두 번 다시 대체되지 않는 일은 영원히 없을 거란 사실이. 로봇 팔, 로봇 다리가 있어서 기쁜 것보다 다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태에 대한 허무함이 더 클 거라는 사실이. 그런 사실들이 그를 두렵게 한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의 김기정은 괴롭긴커녕 오히려 얼굴이 더 나아 보이기만 한다. 황보석은 이 사실이 두려웠다.

황보석은 늙지 않을 그의 몸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잠도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왜 자는 걸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어 부리나케 뒤돌아 그의 방을 나왔다. 밥도 먹어야 하고, 잠도 자야 하면서, 일도 해야 하는데, 몸도 더 튼튼해지고 싶다니. 욕심쟁이가 따로 없다. 황보석은 종종 그를 바보 같다고 생각했고, 아주 가끔 그가 안쓰러웠다.

김기정이라고 마냥 좋겠는가. 그도 어느 순간 깨달았을 것이다.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게 반짝하고 느껴졌을 땐 이미 너무 많은 선택의 기로를 지나왔을 것이다. 고민하고 실행할 때야 두근거리고 좋았겠지만, 적응 단계에서 밀려오는 회의감은 말로 다 옮길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주 가끔, 김기정은 오래전 잃은 왼쪽 다리가 제 의지와 상관없이 날뛰는 것 같은 기이한 감각을 느끼곤 한다. 잠에 취해있던 정신이 맑아지기 시작하면, 다리를 잃을 당시의 고통이 다시금 밀려온다. 존재하지만 실체는 없는 김기정의 왼쪽 다리. 이미 오래전부터 그 자리는 가짜로 만들어 낸 다리가 차지해 왔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는데도 말이다.

 

뜬금없이 잘 먹지도 않는 마라탕은 왜 먹자고 해서. 황보석이 아주 오랜만에 입에 올린 메뉴에 김기정은 신난 얼굴로 오케이~ 라며 배달 어플을 뒤졌다. 한 시간 조금 안 되어 도착한 음식에선 아릿한 향신료 냄새가 났다. 황보석은 식탁에 앉아 국자 가득 그릇에 덜어내고 한참을 먹었다. 그러다 스멀스멀 피어오르던 기시감의 정체를 알아채곤 문득 토해낸다.

“너 땅콩 알레르기 있지 않았냐?”

어릴 적 김기정이 견과류 알레르기 때문에 크게 고생한 후로부터 둘의 집에는 견과류의 기역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외식을 하거나 배달 음식을 먹을 때면 잊지 않고 신경 쓰곤 했다. 분명 땅콩소스는 빼달라고 적혀있어야 할 영수증 요청 사항란은 텅 비어 있고, 향신료 향에 묻혔지만 분명 땅콩 향이 나는 음식을 아무렇지 않게 먹는 김기정의 모습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것이다. 그러니까 황보석이 이 말을 꺼낸 이유는,

“어, 그랬지. 근데 저번에 고쳤거든.”

그를 더 이상 김기정으로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서 그랬던 것 같다.

“됐다. 너나 많이 먹어라.”

 

 

각각의 개체를 구분 짓는 기준은 무엇인가? 심장? 뇌? 두 개 이상의 심장을 가진 인간은 찾기 어려울 것이므로 아마 심장을 기준으로 삼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심장이 교체된 경우에는 다른 개체라고 보아야 하는가? 그건 아닐 것이다. 인공 심장을 달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기준이 뇌라면 어떨까? 주변 환경으로부터 자극을 받아들이고 반응을 일으키는 '행동'을 발생시키는 신경계의 중심에는 뇌가 있다. 우리는 가끔 혹은 자주, 신경계에 이상이 있는 경우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개중에서는 인격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예도 있다. 이런 경우, 인격 외에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사람을 다른 개체의 사람으로 인식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김기정은 여전히 황보석이 아는 김기정이라고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자. 머리부터 발끝까지 인공 장기와 인공 관절로 갈아 끼웠지만, 김기정과 똑같이 행동하고 똑같이 생각하며 똑같이 말한다. 가끔 취미 삼아 집 근처 공원에서 같이 농구공을 던지고, 운동하겠답시고 동네를 달리고, 여전히 책상 앞에 앉아 그림을 그린다. 얼굴도, 목소리도, 눈빛도 똑같다. 하지만 ‘그대로’는 아니다. 김기정은, 여전히 김기정인가?

 

어느 날 황보석이 쓰러졌다. 과로가 원인이라는 것 같았다. 얼마 전부터 황보석은 컨디션이 별로라는 얘기를 입에 달고 살긴 했다. 평소에 운동을 그렇게 하는데도 이럴 수가 있나? 솔직히 김기정은 조금 의심스러웠지만 굳이 티를 내진 않았다. 이제 김기정은 사람의 몸에 대해 잘 안다고 하기도 애매한 위치였고, 남의 몸은 더더욱 몰랐다. 황보석은 응급실에서 수액 맞으며 한참 누워있다가 해가 다 떨어져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게, 제때제때 좀 쉬라고 했잖아. 왜 그렇게 몸을 막 굴려?”

“이럴 때만 사람처럼 굴지.”

황보석은 아니꼬운 얼굴을 하며 안경을 치켜올렸다. 누가 봐도 언짢은 표정이다. 김기정은 황보석이 제 모든 것을 인공물로 갈아 끼운 것을 마음에 들지 않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가끔 다툴 일이 있으면 황보석은 꼭 그 부분을 걸고넘어지곤 했다. 분명 그런 성격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쓸데없이 뒤끝이 길어졌다. 그리고 컨디션 난조의 탓인지는 몰라도, 최근 유난히 신경이 곤두서있는 게 느껴져서, 김기정은 저도 모르게 쓸데없는 눈치를 보곤 했다.

“…미안.”

“로봇이 미안하다는 게 뭔지는 알아? 대단하네.”

“뭐…? 야, 너 말 다 했어?”

“다 했다, 왜? 나는 김기정이랑 친구인 거지, 로봇이랑 친구먹은 적 없어.”

황보석은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이마를 대충 쓸어올리고 방으로 휙 들어갔다. 얼빠진 표정의 김기정은 거실 한가운데 덩그러니 남겨졌다. 저 싸가지 없는 새끼가? 당장 방문을 열어젖히고 정신 차리라며 한 대 패주고 싶은데 역시 방금까지 응급실에 있던 놈에게 할 짓은 아니라는 생각에 참았다. 스스로가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황보석의 입으로 들으니 확인 사살당하는 기분이었다. 속이 울렁거렸다.

 

기계의 몸에서 온전히 살아있는 것이 그의 정신뿐이라면, 그는 지금 말 그대로 통속의 뇌가 된 것과 무엇이 다른가? 유통기한 만 년짜리 통조림에 든 뇌일 뿐이다. 그런데 이제 팔다리가 달려있고, 통조림 속 뇌의 명령에 따라 움직일 수 있다는 거다. 그렇다면 황보석과 김기정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황보석 또한 유통기한이 고작 백 년밖에 되지 않는 고깃덩어리일 뿐이지 않은가?

침대에 걸터앉아 한참 이마를 짚고 있었다. 수액 주사를 맞았던 붙여둔 반창고 아래가 간지러웠다. 황보석은 삼 초에 한 번씩 한숨을 쉬었다. 솔직히 양심이 많이 찔렸다. 말을 뱉자마자 아차 싶었다. 그가 아니꼬운 행동을 할 때마다 속으로만 생각하던 게 입으로 나올 줄은 저도 몰랐다. 이런 작은 행동조차 통제가 안 되는 걸 보면, 아픈 건 참 무서운 거다. 환상통을 겪던 시기의 그가 얼마나 아파했는지를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저 또한 겪었던 일이기에 모른 척 참으라고 넘어갈 수도 없었다. 당시의 황보석은 이렇게 아플 거면 차라리 아무것도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김기정도 그런 생각을 했을까? 그래서 그런 선택을 감행한 걸까?

 

“그럼 너는! 넌 미안하다는 감정이 정확히 뭔지 알아?”

벌컥, 문이 열린다. 시뻘게진 눈가에 그렁그렁 눈물 단 얼굴로 김기정이 소리쳤다.

“화나는 건? 슬픈 건? 네가 그렇게 똑똑해? 전부 다 알아? 그럼 내가 지금 뭐 때문에 우는 건지도 알아?”

얼마나 주먹을 세게 쥐는지, 김기정의 주먹에서 빠드득하고 마찰하는 소리가 난다. 슬픔? 분노?

“너야말로 아무것도 모르잖아! 아는 게 뭐가 있어?”

김기정이 그렇게 소리치는 동시에 방바닥 위로 떨어진 눈물이 튄다. 황보석은 대답하지 못했다. 아픈 곳이 있는 게 아니라면 그는 벅찬 감정에 우는 중일 터인데, 황보석은 이미 그가 감정이 없다고 판단해 버렸으니. 무슨 대답을 해도 모순이었다. 황보석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다못해 작위적인 사과조차 뱉을 수 없었다. 아무것도 헤아리지 못한 채 영화 필름 자르듯 상황을 뚝 끝내버리는 건 의미 없는 짓임을 알았다.

김기정은 무너지듯 침대 위로 몸을 뉘었다. 등 뒤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말로 더 이어가야 할지 고민했다. 침대에 걸터앉은 이의 몸이 아주 조금 떨리는 것이 보였다.

“나야말로 이러고 싶었던 줄 알아? 근데 여기까지 와서 어떻게 돌아가.”

관자놀이를 타고 흐른 눈물이 황보석의 이불을 적셨다.

“그래, 내 잘못이야. 근데 그렇다고 내가 나를 미워하면 안 되는 거잖아. 미워하고 싶지 않았다고. 그래서…. 그래서 그랬어.”

목이 메는 기분에 말이 점점 느려졌다. 한참을 침묵 속에서 숨만 쉬다가, 김기정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나도, 새끼야. 나도 너 이해 못 하는데 끌어안고 살고 있잖아.”

몸을 일으킨 김기정은 뺨과 눈가를 벅벅 문질러 닦았다. 문지른 부위가 마찰에 붉어진다. 자세를 고쳐 황보석의 옆으로 앉은 김기정은 조금 머뭇거리더니 이내 한숨과 함께 마지막 말을 토했다.

“그냥 말이라도 이해한다고 좀 해주면 어디 덧나냐?”

황보석은 누구보다 김기정을 가장 잘 알았다. 김기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김기정이라는 것을 그가 모를 리 없었다. ‘가짜’ 김기정이라든지, ‘로봇’ 김기정이라는 건 애초부터 말이 안 되는 거였다. 가슴이 답답하고 속이 울렁거렸다. 모든 게 저의 탓인 것 같아서 불편했다. 속절없이 밀려오는 감정의 파도가 눈물이 되어 쏟아진다. 한참 정적이 계속된다. 가끔 바르작대는 감각만 느껴졌다. 조용히 숨을 크게 들이마시는 소리나 킁 하고 코를 먹는 소리도 아주 가끔 들렸다.

“미안…. 이제 내가 미워졌어?”

김기정이 어깨에 머리를 기대어왔다. 황보석은 가만히 앉아 코와 입으로 공기가 드나드는 감각을 느꼈다. 곧 목이 메는 기분에 숨을 크게 들이쉬었고, 얼굴이 뜨거워져서 안경을 벗었다. 이내 다시 눈물이 차오른다. 황보석은 젖은 얼굴을 손바닥에 묻은 채 조용히 그에게 답했다.

“미안하긴 네가 뭐가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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