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아
새맑은 봄볕이 불어오는 날이면
Published
Apr 13, 2025
Topic
novels
<마지막 희망이 휘몰아칠 때까지>와 이어지는 것일지도 아닐지도 모르는 이야기.
김기정과 함께 보내는 이십사 시간이란 얼마나 희귀한가. 서로의 바쁨이 서로의 시간을 베어내지 않게 하기란 참 어려운 직업을 가졌다고 황보석은 생각한다. 그는 주중에 시간을 낼 수 없고, 김기정은 언제 바쁠지 모른다. 불확실과 확실의 교집합은 결국, 확실한 지지대라는 것을 소유한 이의 허용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다. 그렇게 두 사람이 연애다운 연애를 하며 보내는 날은 보통 주말에만 존재했다. 그 시간을 어떻게 채우느냐, 라는 질문의 답은 쉽다. 하루는 김기정이 주도해서 황보석은 보도듣도 못한 축제에 가거나, 하루는 황보석이 퇴근하고 짬을 내 후기를 읽고, 새로 나왔다던 영화를 예매해서 극장에 가거나 하며, 여느 평범한 연인처럼 둘이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밀렸던 애정의 표현도 사이드로 가끔 곁들이면서 말이다.
오늘, 두 사람의 휴일이 겹치는 날, 황보석은 이전과 마찬가지의 과정을 겪는 중이다. 김기정의 동료 사진가의 동생의 친구…….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설명을 미리 차단한다. 알겠으니까 초대장 줘 봐. 근처에 주차장이 없어서 지하철 타고 가다가 걸어가야 해. 밝은 웃음과 함께 건네진 빳빳한 종이를 쥔다. 위치를 확인하니, 그들의 집에서 도보 포함 편도 한 시간 거리의 중소형 갤러리다.
아직 바람 차가우니까 목도리 잊지 말고.
네에, 황보 쌤.
여느 때와 똑같은, 습관적인 참견과 장난기 어린 대답이다. 황보석은 그의 학생인 것처럼 말꼬리를 늘어뜨리는 김기정의 머리를 작게 쥐어박는다. 김기정이 심한 감기에 걸렸던 주간, 결국 황보석 자신에게까지 옮아 병가를 내야만 했던 날들을 기억하며 황보석도 목도리를 하나 두른다. 몸에 아무리 열이 많아도 목을 옥죄는 냉기 앞에는 장사 없다.
아직 겨울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날씨다. 오전 열 시, 정오의 따사로운 햇볕을 향해 차근차근 진군하는 시곗바늘에도 불구하고, 집을 나서자마자 두 사람의 손목을 감아 오는 바람은 그늘의 비호 아래 마음껏 냉기를 뽐낸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손이 그나마 옷 사이로 스미려는 시도들을 배격한다. 세 정거장 가서 몇 번 노선으로 갈아타야 하고, 삼 번 출구에서 내려 이백 미터 직진하고 오른쪽 골목으로 꺾어, 또 얼마간 걸어야 한다는 확인. 그대로만 가면 이동 시간을 오십 분으로 단축할 수 있다는 판단이 나온다.
그대로 가는 일은 역시나, 없다. 지하철 출구에서 나오자마자 얼마 걷지 않았는데, 김기정이 일찍 문을 연 카페를 유심히 들여다본다. 따스한 조명 아래 정연히 정렬된 수십 권의 책에 이끌린 시선은 황보석이 끌어당기든 말든 색색의 책등에 고정되어 있다. 십여 분 후 카페를 나서는 두 사람의 손에는 각기 뜨거운 아메리카노와 라테가 한 잔씩 들려 있다. 김기정의 지갑은 명함 한 개분의 무게가 더해진 채다.
전시관 앞에 당도하니, 황보석은 자신이 현대 미술에 유난히 견문이 넓지 않음을 실감한다. 대학 시절, 김기정의 손에 이끌려 찾았던 전시회의 숫자가 무색하게, 그는 여전히 동시대 예술가들의 작품에서 소위 말하는 ‘매력 포인트’를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현대 미술 이론>이라는 제목을 가진, 벽돌의 크기와 무게를 닮은 책을 한 권 사기도 했다. 첫 오십 페이지 이후 넘어가지 않은 책장은 현재까지도 열심히 먼지를 모으고 있다.
커다란 유리로 입구 쪽 벽면을 메운 갤러리의 안쪽은 몇 명의 작가가 합동 전시회를 열고 있다는 안내 포스터에 가려져 있다. 황보석은 포스터에 가득한 얇고 삐침이 많은 서체를 멍하니 쳐다보다가 갤러리의 문을 연다. 소리 없이 열리고 닫히는 유리 앞, 입장권을 배부하는 안내데스크에 초대장을 내밀어 보인다. 즐거운 관람 되시라는 멘트가 조용한 전시실 내에서 한 번, 두 번 울리다가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황보석에게는 직관적인 작품이 정확히 절반만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전시다. 오리처럼 생긴 와이어 작품은 무얼 상징하는지 분명하다. 하지만 종이컵을 꿰어 천장에 주렁주렁 달아 놓은 작품은 여전히 그의 이해를 벗어난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의 머리를 긁적이게 하는 것은 추상화다. 그 그림은 김기정에게 초대표를 준 사람이 그린 것이기도 하다. 황보석은 어지러운 색상의 집합이라고밖에 생각이 되지 않는 캔버스를 뚱하게 바라보다가, 김기정 쪽으로 슬쩍 고개를 기울인다.
너는 도대체 이런 그림을 어떻게 해석하는 거냐.
속삭인 질문에 김기정이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리며 작은 미소를 보여준다.
그냥 느껴, 석아.
그러더니 김기정은 벽에 걸린 캔버스 앞에서, 눈을 감고 폐가 부푸는 것이 보일 정도로 크게 숨을 들이쉰다. 내쉰다. 그가 그러는 동안 황보석은 의심 가득한 표정으로 친구-동거인-애인을 바라본다. 그러다, 이내, 그의 말을 따른다. 김기정의 옆에 선다. 똑같이 눈을 감는다.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인간의 감각은 상호보완적이다. 하나가 차단되면 다른 감각들이 금방 살아나고, 예민해진다. 사라진 시야의 자리를 채우는 것은 청각의 심상. 조용한 갤러리 안, 위잉 돌아가는 공기 청정기와 송풍기의 소리. 김기정의 숨소리. 황보석 자신의 폐를 채웠다가 빠져나가는 날숨의 소리. 그런데, 기정아. 나는 무얼 느껴야 하는 거야? 목젖까지 차오른 질문을 겨우 다시 삼킨다. 이제는 청각과 함께 다른 감각들이 조화를 이루도록 기다리는 시간이다. ……라고, 김기정이 말하겠지. 황보석은 애인의 목소리를 머릿속에서 만들어 내고 그 기대에 부합해 본다. 결과를 도출해야만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는 자기 생각은 잠시 넣어 두면서.
공기 중에 퍼지는 은은한 아카시아 향기. 전시관의 입구 앞에 보였던 자그마한 방향제가 생각난다. 이미 말라버린 유화 물감의 냄새가 향수의 베이스 노트처럼 묵직하게, 아스라하게 깔린다. 황보석은 자기 후각이 그렇게 발달했다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감각 자체에 집중하니까 열리는 세계는 그의 예상보다 몇 배는 넓다. 눈을 감으면 남는 것은 시각의 잔상. 분홍과 노랑과 연두와 하늘, 봄의 색을 들이부은 것 같았던 캔버스가 눈꺼풀 뒤에서 어른거린다. 싱그러운 공기의 색, 잠깐, 내가 언제부터 공기에 감각을 이어 붙여서 생각했지?
침묵은 사색의 도구다. 김기정과 함께 지낸 세월이 아주 공치지는 않은 모양이다. 황보석은 어느새 자기 머리 안에 침투한 김기정의 생각을 발견한다. 호흡이 바람이 되고 초원의 잔디를 살랑이게 하고 햇빛을 실어 날라 봄을 움트게 하고, 논리를 자기 마음대로 갖고 놀며 언어의 규칙을 비웃는다. 시야에 김기정의 눈이 덧씌워진 것만 같다. 눈을 뜨니 다시 그림이 보인다. 조금은, 달라진 빛으로.
어때? 여전히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거냐는 질문에 답이 있다고 생각해?
태초에 던졌던 질문에 대답 대신 돌아온 또 다른 질문. 황보석은 그러면 왜 없겠냐고 반박하려다가, 김기정의 물음이 실상 답을 내포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렇구나. 가만히, 정지한 시간 속에서 감각을 자극하는 것들. 자연스러운 것, 순간의 감상, 휘발되는 찰나의 집합체. 그는 고개를 저어 보이며 통창 바깥, 어느새 다시 드러난 태양 아래 햇살을 반사하는 가로수 새순의 군무를 바라본다.
남들만큼 ‘좋은’ 감상을 할 필요 따위는 없었던 거야. 처음부터, 지금까지, 항상.
이제 졸업했으니 더는 턴오버를 할 수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실수는 그가 생을 마칠 때까지 반복할 모양이다. 김기정의 손을 꼭 쥐었다가 놓는다. 아니야, 이해했어, 목소리에 담긴 후련함이 김기정에게 닿은 모양이다. 말간 얼굴의 올라간 입꼬리는 내려올 줄을 모른다. 안쪽 전시실로 이끄는 그의 손이 봄 그 자체처럼 따뜻하다.